혹성탈출: 진화의 시작 (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)
이미 널리 알려진 원작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제작자에게는 일종의 안전판이 마련될 여지가 있지만 감독에게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. 원작의 설정이 그 아무리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말이다. 하물며 식스센스가 나오기 전까지 수십년간 최고의 반전으로 회자되었던 작품이라면.
굳이 팀버튼의 망작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혹성탈출이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드는 의문은 별 수 없이 “도대체 왜?” 이다. 이 성공적인 시리즈물의 외투를 입어야만 전할 수 있는 메시지의 존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으리라.
결론적으로 이토록 가능성이 낮아보이던 작업의 결과물은 성공적이다. 한 편의 영화가 성공적으로 리메이크 된 것 뿐이 아니다. 어쩌면 새로운 걸작 시리즈의 리부트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. 68년에 시작한 원작 시리즈를 즐겼던 사람들에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겠지만 본질적으로 이 새로운 시리즈는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갈 가능성이 많다. 따라서 설정의 유사성만 유지했을 뿐 전혀 다른 시리즈의 기원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.
설정의 참신함, 플롯의 신선함, 탁월한 액션 연출, 3D 촬영…어찌보면 성공한 영화의 요소라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이 영화엔 없다. 무리를 두지 않는 설정(금문교 씬과 유인원들이 찾은 숲은 예외로 하자), 무난한 플롯, 현란하지 않은 카메라 워크로도 충분한 긴장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. 오롯이 CG로 만들어진 주연배우지만 그래픽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멀미를 수반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탄사를 짓게 만든다. (어쩌면 사상 최초로 CG 주연에 연기상이 주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…) 많은 대사를 주고 받지 않아도 그 어떤 영화보다 감정이입이 충실히 이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. 영화의 언어가 대사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효과적인 교과서가 될 듯 하다.
한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음악과 음향의 효과적인 사용이다. 말그대로 “소리”의 효과를 적절하게 사용한다.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만큼.
이제 드와이트의 시리즈 다음편이 기대된다. 배트맨 비긴즈 이후에 걸작 다크나이트의 등장을 목도했던 그 기대치가 이 시리즈의 다음편에 오롯이 담겨있다.
